月刊 아이러브 PC방 3월호(통권 400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1990년대의 컴퓨터 케이스에는 ‘디자인’ 요소가 거의 없었고 하드웨어 결합과 냉각 등 기능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후 누워 있던 케이스가 모로 서고, 눈에 띄는 위치로 자리를 옮기면서 일부 기능이 탑재되는 동시에 디자인적 요소가 가미되기 시작했다. 색깔은 전통적인 화이트나 블랙에서 다채로워졌고, 직육면체가 기본이던 모양은 형태를 말로 설명하기 쉽지 않은 구조까지 발전했다.

수년 전부터는 PC 내외부 하드웨어에 RGB LED가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발광 효과는 유행의 파도에 따라 흥행과 쇠퇴를 반복하고 있다. PC방의 경우 조도가 낮았던 당시에는 밝기도 어둡고 얌전했지만, 내부가 밝아지면서 LED도 덩달아 휘황찬란해졌다. 최근에는 측면에 더해 전면, 상단까지 강화유리를 적용해 내부가 더 잘 보이는 케이스가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이에 RGB LED가 적용된 하드웨어 역시 다시 유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분명 똑같은데 ‘정말 화려해요 → 너무 화려해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PC 케이스는 ‘투명한 측면’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당시의 PC에서 케이스가 차지하는 중요도는 매우 낮았고, 지금처럼 냉각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지 않았던 터라 쿨링팬의 가치도 그리 높지 않았다. 대부분의 케이스는 별도로 흡기를 하지 않고 측면에 구멍을 뚫어 공기를 끌어들였고, 배기는 후면의 팬 하나로 해결했다.

하드웨어 성능이 점차 높아지며 냉각에 대한 중요도 역시 점점 높아졌고, 이와 함께 PC를 ‘꾸미는’ 것이 조금씩 유행하기 시작했다. 직육면체가 당연했던 PC 케이스는 간단히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형태로 등장했다. 소위 ‘건담 케이스’로 불렸던 모델은 만화 속 로봇의 신발 정도에 해당하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시선을 끌기도 했다. 다만 구조적 특성상 케이스가 항상 열려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관리는 쉽지 않았다.

이와 함께 발전한 것이 PC 내부 하드웨어의 RGB LED다. 특히 쿨링팬의 LED는 비교적 낮은 가격에 화려한 RGB 효과를 낼 수 있어 점점 선호도가 높아졌다. 현재 가격비교사이트에 등재된 가장 오래된 LED 쿨링팬은 2008년에 출시됐는데, 본격적으로 PC에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경부터다.

이후 RGB LED는 온갖 곳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시스템 쿨링팬과 CPU 쿨러 팬, 그래픽카드 쿨링팬 등 각종 쿨링팬에는 LED가 기본 소양처럼 됐고 메인보드, 메모리, 그래픽카드 측면 등 거의 모든 PC 부품에 LED가 자리를 잡게 됐다.

이런 트렌드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데, 대부분의 PC LED는 기본 설정에서 바꾸지 않고 유지한다. RGB LED의 기본 발광은 그 LED 라이트가 가진 컬러를 바꿔가며 빛내는데, PC방의 경우 시각적인 효과를 위해 케이스를 책상 위에 배치하면서 일부 손님들에게는 그 정도가 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각종 커뮤니티의 반응을 살펴보면 장소를 막론하고 외부에 노출돼 있는 PC의 경우 LED 컬러를 통일하거나 아예 없애는 것이 더 낫다는 의견이 의외로 많은 편이다.

LED는 케이스 디자인과 함께 진화해 왔다
LED는 케이스 디자인과 함께 진화해 왔다

새로운 트렌드 만들어가는 파노라믹 케이스
측면에 아크릴, 강화유리 등 투명한 소재를 적용한 케이스는 십수 년 전에도 있었다. 현재 가격비교사이트에 등록된 PC 케이스는 1,430여 종인데, 측면에 강화유리가 적용된 제품이 약 760여 종으로 절반 이상이다. 투명한 소재를 적용하기 시작했을 때는 측면 패널로 아크릴도 많이 사용했는데, 강도와 투명도의 문제로 지금은 90%가 강화유리를 사용한다.

측면 강화유리는 두 가지 종류로 적용된다. 도넛처럼 패널 철판의 중앙 부분을 뚫어 강화유리를 덧댄 디자인, 그리고 측면 패널 전체를 강화유리로 만든 디자인 등이다. 초기에는 거의 모든 케이스가 전자를 택했지만, 지금은 내부가 더 잘 보이는 전체 강화유리도 많이 적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측면에 이어 전면에도 강화유리를 적용해 마치 어항처럼 앞과 옆 어디에서 봐도 내부가 훤히 보이는 디자인이 유행하고 있다. ‘파노라믹 케이스’로 통칭하고 있는 이 디자인은 수년 전에도 간간이 볼 수 있었지만, 보통은 두 강화유리 면이 맞닿는 부분이 프레임 소재여서 모니터 2개를 이어놓은 것처럼 세로로 나뉘어 보이는 것이 단점이었다.

그러다가 유리가 맞닿는 면의 프레임을 없애 개방감을 더욱 크게 살린 케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NZXT ‘H9 엘리트’, 1stPlayer ‘Mi8’ 앱코 ‘수트마스터 U3000 갤러리’ 등이 대표적인 예로, 전면 쿨링팬 흡기를 포기한 대신 내부 구조를 더 잘 보이게 해 케이스가 낼 수 있는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다.

2월 말 현재 시점에서 파노라믹 케이스의 방점은 리안리가 찍었다. ‘O11 비전’ 케이스는 측면과 정면에 이어 상단까지 3면에 강화유리를 적용해 지금까지 출시된 파노라믹 케이스 중 가장 큰 개방감을 선사한다. 가격대가 높기로 유명한 리안리 제품이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10만 원대 후반에 판매되고 있다.

우측 패널은 메인보드 장착, 후면은 인터페이스와 배기, 하단은 흡기 담당인 점을 감안하면, 파노라믹 케이스는 사실상 O11 비전처럼 3면 강화유리가 한계로 보인다. 더 나아간다면 CPU와 GPU를 수랭 쿨링으로 처리하고 하단을 제외한 5면을 강화유리 커버처럼 제작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아 실현 가능성이 낮다.

2면 강화유리 케이스는 몇 개월 새 종류가 급격히 늘었다
2면 강화유리 케이스는 몇 개월 새 종류가 급격히 늘었다
리안리 O11 비전 케이스
리안리 O11 비전 케이스

인테리어 아이템으로서의 활약, ARGB 적극 활용해야
케이스 내부가 더 잘 보이게 되면 장점도 있지만 불가피하게 단점도 따라온다. 장점은 호불호가 갈렸던 내부 RGB LED를 더 효율적이고 화려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지만, 장점이 그대로 단점이 되기도 한다. 내부가 더 잘 보이는 만큼 화려함도 그 강도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이럴 때 활용해야 하는 것이 주소지정 RGB (Adressable RGB, ARGB)다. RGB LED는 최대 1,680만 가지의 색을 내는 만큼 나름의 조합을 통해 고유한 컬러를 연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별도로 컬러 설정을 하지 않으면 정해진 컬러와 패턴을 반복해 획일적인 모습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ARGB는 LED 탑재 하드웨어의 제조사가 각기 다르더라도 통일된 컬러와 패턴을 설정하는 것을 가능케 해준다.

대부분의 메인보드 제조사는 ARGB 제어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애즈락 폴리크롬 싱크, 에이수스 아우라 싱크, 기가바이트 RGB 퓨전, MSI 미스틱라이트 싱크 등이다. ARGB를 지원하는 메인보드는 별도의 ARGB 헤더를 지원하는데, 이 헤더와 제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케이스 전체의 LED 컬러를 통일시킬 수 있다.

일반 RGB와 ARGB의 차이는 컬러의 표현인데, RGB는 다양한 컬러를 내는 것은 가능하지만 한 번에 한 가지 컬러만 낼 수 있다. 무지개 컬러를 번갈아 빛낼 수는 있지만 7가지 색을 한 번에 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반면 ARGB는 다양한 컬러를 동시에 낼 수 있어 매우 다채로운 연출이 가능하다. PC방에서 인기 있는 게임의 테마 컬러를 케이스 LED에 적용하거나 컬러를 다양하게, 혹은 주기적으로 바꿔가며 수시로 매장 분위기에 변화를 줄 수 있다. 그것도 웬만한 인테리어 소품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파노라믹 케이스에서 RGB LED 연출을 위해서는 메인보드에 ARGB 헤더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일반 RGB는 12V 헤더, ARGB는 5V 헤더를 사용하는데, 쿨링팬 전원 커넥터가 4핀이면 RGB, 세 번째 핀이 없는 3핀이면 ARGB다. 메인보드에서 이 헤더를 지원해야 ARGB를 활용할 수 있다.

다만 ARGB는 지원 제품을 별도로 구입해야 하는데, ARGB가 아니라 하더라도 상술한 제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LED 컬러나 패턴을 제어할 수 있다. 또한, 일부 LED 쿨링팬은 메인보드의 리셋 핀에 연결하는 커넥터를 제공하기도 하는데, 이를 리셋 핀에 연결하면 케이스의 리셋 버튼으로 컬러를 바꾸거나 on/off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쿨링팬은 ARGB와 더불어 별도의 리모컨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쿨링팬은 ARGB와 더불어 별도의 리모컨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메인보드와 쿨링팬의 커넥터를 잘 보면 RGB와 ARGB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자료: 비콰이어트)
메인보드와 쿨링팬의 커넥터를 잘 보면 RGB와 ARGB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자료: 비콰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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