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 PC방 2월호(통권 399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자영업·소상공인이 정치권으로부터 이렇게까지 관심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지난해 겨울부터 시작된 ‘민생 타령’은 해를 넘겨서도 계속되고 있다. 자영업자 가계부채가 대한민국 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되자 정부는 금융권을 거의 협박하다시피 해서 ‘상생금융 지원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코로나 시기 온갖 방역조처로 얻어맞은 자영업·소상공인들은 빚을 내서 버티느라 신용이 급락했고, 희망을 갖고 맞이한 엔데믹 시기에도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없어 절망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렇다 보니 올해는 여기저기서 상생을 외치면서 자영업·소상공인을 챙기기에 한창이다. 여야는 약속이나 한 듯 대출 규모 확대, 정책자금 지원 강화, 산재보험 지원을 발표했고,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특별사법경찰조차 점검·단속 계획을 발표하면서 올해는 개별 업소가 아닌 업체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겠다고 강조했다.

소식을 접한 자영업·소상공인들은 대체 왜 그러는지 어안이 벙벙한데, 이런 분위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오는 4월 총선이 코앞이라 표심을 잃지 않는 것이 정치권의 지상과제이며, 자칫 말 한마디라도 잘못했다가는 700만 자영업자들에게 외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표면상 드러나는 역학만 보자면 자영업·소상공인의 입지는 나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아니다. 지난달 27일부터 적용된 중대재해처벌법이 그 증거다. 이런 법안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던 자영업·소상공인들은 황당할 수밖에 없다.

법안의 적용 유예를 절박하게 호소했지만 국회는 법안 처리를 강행했다. 결국 5인 이상 사업장으로 적용 대상이 확대됐고, 고용노동부는 새롭게 추가된 사업장 전체에 대한 안전 진단 작업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중대재해법은 상시근로자 5인 이상의 모든 사업장이 그 대상이다. 소규모 건설 업체나 식품공장뿐만 아니라 동네 PC방, 식당, 카페 등을 모두 포함한다. 약 83만 업체, 약 800만 명의 근로자가 중대재해법의 영향을 받게 됐다.

그 내용도 살벌하다. 심지어 법안 이름에 ‘처벌’이 들어있다. 사업주가 근로자의 안전을 지키도록 책임을 의무화하는 것이 골자인데 근로자가 숨지거나, 여러 명이 다치거나, 질병을 앓을 경우 사업주가 안전보건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면 최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하지만 자영업·소상공인 대다수는 해당 법안 자체를 모르거나, 알더라도 자신에게 적용되는 사항인 줄 모르고 있다. PC방 업주들 사이에서도 “건설현장이나 식품공장에 관련된 법 같다. 동네 장사인 PC방에는 해당 없을 것 같다”는 반응이 태반이다.

실제로 중대재해법은 상시근로자가 50명 이상, 공사금액 50억 원 이상인 현장에 적용된 법이었다. 이번에 근로자를 5인 이상 고용한 사업주라면 누구나 적용되도록 바뀐 것인데, 24시간 운영하는 PC방 업종에는 업주가 최대한 일하면서 3교대 체재로 인력을 관리해도 이 기준을 넘는 대형 매장이 적지 않다.

현재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이 수사 중인 중대재해 사건 59건 중에서 17건은 수사만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불명확한 규정 때문이다. 실정이 이런데 83만 업체가 더해지면 대략적인 사건 검토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 자명하다. 고통스러운 시간이 길어진다는 의미다.

중소기업중앙회 김기문 회장은 “83만 명이 넘는 영세기업 대표들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심정”이라고 지적했다. 당장 고용이 위축될 뿐만 아니라 만일을 대비해 기존 직원도 줄여야 할 판이다.

PC방은 어떻게든 고용 인원을 줄여 5인 미만으로 매장을 운영하는 쪽으로 압박을 받게 된다. 심각한 구인난으로 PC방 업주의 근무시간은 이미 과도한 수준인데, 여기서 더 늘어날 것도 뻔하다. 일각에서는 연간 11,000명씩 고용이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놨다.

정치권은 총선을 염두에 두고 실효성 없는 자영업·소상공인 지원 공약을 남발할 것이 아니라, 당장 엎질러진 물부터 주워 담아야 한다. 여야는 분양가상한제 아파트 실거주 의무와 관련해 3년 유예 방안으로 절충점을 마련한 전례가 있다.

새롭게 발표한 공약들이 선거를 위한 선심성 공약이 아니라 진정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중대재해처벌법’은 지금 당장 원점부터 재논의해야 할 것이다. 총선은 아직 두 달 넘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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